게임이용장애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는 2019년 5월에 세계보건기구의 ICD에 공식 등록된 질병이다.
역사
2019년, “게임이용장애”가 추가된 국제질병분류 개정판이 정식으로 채택됨
세계보건기구의 ICD는 모든 질병과 사인을 포괄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일종의 사전이다. 1990년대에 만들었던 버전(ICD-10)에 대한 개정판(ICD-11) 초안에 게임이용장애가 새로 추가되었다(2019년). 이 개정판을 정식으로 채택할지 여부가 세계보건기구 총회의 안건 중 하나로 올라왔고(WHA 72) 한국을 포함한 모든 참가국이 만장일치로 의결함에 따라 2022년 1월 1일부터 ICD-11이 정식으로 채택됐다.1
몇몇 참가국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의 발언을 했으나 명시적 수정 제안은 없었다. 미국은 게임이용장애가 그 자체로 질병인지, 다른 질병의 증상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게임이용장애 등재가 건전한 게임이용(healthy gaming)을 장려할 것이라는 점을 환영하는 한편,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수준의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에 대해서는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는 정도의 의견을 제시했다.2
2007년, 논의의 시작
사실 ICD-11 개정판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7년이고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각 회원국과 여러 외부 단체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했으며3 내용 자체가 확정된 것은 2018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4 개정판이 2019년 총회에서 갑자기 날차기 통과라도 됐다는 듯 요란을 떠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다.
게다가 미국 APA의 정신질환진단매뉴얼(DSM-V)에도 이미 2013년에 행동적 중독(Behavioral addiction) 범주가 추가된 바 있고 “인터넷게임이용장애”라는 이름의 질병을 이 범주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으며 당시에 이미 게임이 인간의 삶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명시했더랬다.5
각 분야의 반응
임상 심리, 공공 보건 분야 종사자들은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대체로 지지하는 반면 심리학, 사회학, 교육학, 게임 디자인 관련 분야 종사자들은 결정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6 학계의 비판은 주로 과학적 근거가 아직 충분치 않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것이 게임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등에 기반한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중 보건 정책에 있어서는 예방 원리가 우선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 생태계나 인간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면, 과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예방적 조치를 미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8
국내에서도 게임개발자연대에서 공식 입장9을 내고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도 성명서10를 냈다.
게임개발자연대 공식 입장에 대해
게임개발자연대의 공식 입장9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통한 과소비 유도, 리텐션 확보를 위한 반복적 접속 유도 등 게임 업계의 문제적 관행을 언급한 점을 지지한다.
다만 몇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이는 내용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게임개발자연대의 공식 입장만 읽어보면 마치 “유해한 게임이용”과 “게임이용장애”라는 두 가지 질병이 추가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ICD-11에서 게임과 관련하여 추가된 정신장애는 “게임이용장애” 하나 뿐이다. “유해한 게임이용”은 그 자체로는 질병이 아니라 건강에 영향을 주거나 건강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는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제안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요인들을 나열해보자면, ‘운동을 안함’,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낮은 소득’ 등이 있다.
공식 입장의 “해석”에 의하면 “유해한 게임이용”에는 “게임 플레이 중 타인에게 욕설을 하거나, 자신의 실수에 자책해서 자해를 하거나, 게임에서 졌을 시 타인에게 욕설을 퍼붓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동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은 좀 과장된 느낌이고 어떤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나는 찾지 못했다.
둘째, “게임이용장애”는 행동 중독(behavioral addiction) 또는 장애(disorder)로 번역해야하는데 그냥 중독(addiction)으로 번역하는 바람에 마치 약물 중독이랑 같은 것인냥 오해가 커진다는 설명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중독이라는 단어가 비하적 의미로 쓰이는 점,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 등의 이유에서 이 단어의 사용을 지양하자는 주장, 각 질병의 원인/증상/치료법에 차이가 있으니 약물오남용/의존증/행위중독을 구분하자는 논의 등은 타당하지만,11 행동 중독이나 장애로 번역해야할 용어를 그냥 중독으로 번역해서 오해가 커졌다고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DSM-V의 “인터넷게임이용장애” 제안과 ICD-11의 “게임이용장애” 등록 모두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와 관련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련 연구를 장려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5 즉, 표현이 어찌 되었건 간에 게임을 술이나 담배 등과 같은 물질에 준하여 취급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게 맞다.
나는 게임을 중독 물질에 준하여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IT 업계와 게임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인간의 행동에 지속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주기 위해 업계에서 시도하는 전문적이고 집요한 노력에 비하면, 이용자 개개인이 이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일이란 너무나 미약해보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참고:
다만 “게임이용장애”라는 범주화는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이름은 마치 “맥주 중독” 같은 느낌이다. “맥주 중독”이 질병이라면 막걸리 중독, 소주 중독, 와인 중독 등이 모두 따로 등록되어야 할텐데, 이보다는 “알콜 중독(정확히는 알콜 의존)“이 유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형태로라도 일단 시작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성명서에 대해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도 성명서10에서는 WHO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기구이므로 명백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만 질병 등록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앞서 얘기한 WHO의 예방 원칙8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성명서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게임이용장애라는게 예방 원칙조차 적용할 수 없을 수준으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나 게임으로 인한 피해가 경미하다는 점을 논증해야 한다. 단순히 근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것으로는 논의가 하나도 진전될 수 없지 않나.
또다른 주장으로, 몇몇 국가의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게임은 제대로 된 평가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일방적인 지목을 받게 됐다”고 말하는데, 이 자료3만 보더라도 2007년부터 수없이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절차적 투명성은 적어도 DSM-V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이 주장대로 정말 제대로 된 평가 기회가 없었다면 그건 그동안 협회를 포함한 관련 단체가 제대로 대응을 안하고 있었다는 문제를 고백할 뿐인게 아닌가.
세번째로, 프로게이머가 “중증 정신질환자”인지, WHO의 입장대로 프로게이머는 에외라면 프로게이머 지망생은 “게임이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가 맞는지 묻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첫번째 문제는 협회가 정신질환의 정의를 잘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인데, DSM이건 ICD이건 단순히 뭘 오래 하거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걸 정신질환으로 보지는 않는다. 두번째 문제는 입장문 자체가 사회에 만연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프로게이머들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해당한다”, “게임이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가 된다” 등의 문장을 써가며 협회가 나서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게임은 우리나라 전 국민의 70%가 즐기는 대표적인 콘텐츠”라고 주장하며 “게임 그 자체가 아닌, 개인을 둘러싼 주변 환경 요소 및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두 주장은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다. 국민의 10%가 즐기건 70%가 즐기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상당수의 성인이 술을 마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콜 의존증을 질병 분류에서 제외하지는 않는다. 음주는 문화다. 그리고 알콜은 중독을 야기할 수 있는 물질이다. 이 두 사실은 양립 가능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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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ho.int/news-room/detail/25-05-2019-world-health-assembly-upd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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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ho.int/about/governance/world-health-assembly/seventy-second-world-health-assemb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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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pps.who.int/gb/ebwha/pdf_files/WHA72/A72_29-en.pdf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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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ho.int/news-room/detail/18-06-2018-who-releases-new-international-classification-of-diseases-(icd-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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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psychiatry.org/patients-families/internet-gaming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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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kjournals.com/view/journals/2006/7/3/article-p556.x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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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uro.who.int/__data/assets/pdf_file/0003/91173/E83079.pdf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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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x.com/gdguildofkorea/status/1132665399437189120 ↩ ↩2
-
The science of addiction ↩